3️⃣ 작가 시리즈: 윤형근 3탄
스승, 김환기에게서 배운 것

© 한겨례
윤형근과 김환기의 인연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제1회 입시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김환기는 시험감독관으로, 윤형근은 수험생으로 만나며 이후 윤형근 예술 여정의 출발점이 됩니다.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에서 김환기는 윤형근을 이끌어 주는 든든한 존재였고, 이후 두 사람은 장인과 사위같은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윤형근은 평생 김환기를 ‘아버지’라 부르며 깊은 존경과 애정을 표현했고, 김환기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두 사람은 가장 신뢰하는 예술적 동지로 남았습니다. 두 사람의 나이 차는 15살 남짓, 큰 세대 차 없이 예술가로서 겪는 외로움과 시련을 함께 나누었기에, 이들 사이에는 단순한 사제 관계를 넘어선 묵직한 동지애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천지문, 하늘과 땅을 잇는 문

© Laziz Hamani
윤형근 화백이 강조한 ‘門(문)’은 두 개의 문짝이 마주 선 형상을 본뜬 글자로, 문이 열리고 닫히며 만들어내는 공간의 의미를 내포합니다. 문 사이의 빈 공간은 단순한 틈이 아닌, 가능성과 통로의 상징으로, ‘門(문)’에 태양 ‘日(일)’이 더해진 ‘問(물을 문)’이라는 글자는, 두 문짝 사이로 햇빛이 스며드는 형상을 나타냅니다.
윤형근은 세로로 나뉜 삼단 구도를 ‘천지문(天地門)’이라 명명했습니다. 그는 “내 그림의 命題(명제)를 天地門(천지문)이라 해본다. BLUE(청색)는 하늘이요, UMBER(암갈색)는 땅의 빛깔이다. 그래서 天地(천지)라 했고, 構圖(구도)는 門(문)이다.”라고 말하며, 단순한 구도를 넘어 하늘과 땅, 그 사이을 연결하는 하나의 문이라는 상징을 나타냅니다.
청과 갈, 자연을 담은 색

© rkive
윤형근은 “나는 언제부터인가 흙 빛깔이 좋아졌는지 잘 기억은 안 난다. 또 나무 빛깔도 그렇다. 또 돌의 빛깔도 그렇다. 자연 경치의 빛깔, 특히 겨울의 자연 빛깔이 좋다. 이 모두가 인조(人造)가 아닌 자연의 빛깔, 그중에서도 좋은 자연의 빛깔이 좋다.”라고 말하며, 꾸밈없는 자연 속에서 진실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감성을 중요시했습니다.
그가 말한 청(靑)과 갈(褐)은 흙, 나무, 돌, 겨울 하늘이 지닌 자연의 빛깔입니다. 이는 단순한 색의 조합이 아니라, 곧은 품격과 맑고 흐리지 않는 정신을 상징합니다. 조선 선비의 정신이 오늘에 되살아난 듯, 그의 색은 고요하고도 단단한 인격의 깊이를 닮아 있습니다.
윤형근의 철학
윤형근 화백의 작품에는 그의 삶이 고스란히 스며 있습니다. 그는 20세기의 격동을 온몸으로 겪으며, 정직한 인간상으로서 그림의 본(本)을 남긴 작가입니다. 그의 어둡고 묵직한 형상은 불의에 맞서는 침묵의 번뜩임이었고, 마른 하늘에 무지개처럼, 때로는 벼락처럼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시대의 고통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이를 화폭에 새긴 그의 작업은, 움직임 없이도 숭고한 정신을 담은 상징이 되었고, 민족의 아픔을 가슴 깊이 새긴 채 뜨거운 벌판 위에 지워지지 않는 불망(不忘)의 시(詩)를 써내려갔습니다.
그의 작품은 그의 사후인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큰 여운을 주고 있습니다.